당신은 왜 컬렉팅을 하는가?
불확실성을 붙잡고 버티는 것, 그것은 작가로서 가져야 할 중요한 전략입니다
윌리엄 켄트리지
William Kentri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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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굉장히 확고한 계획으로 어느 방향으로 걸어가야 하고, 어디다 무엇을 그려야 하는지 정해놓는다면, 자신의 작품이 우연적으로 어떤 창의적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그 기회를 막아버리게 돼요.
정답을 모르는 것, 그리고 그 불확실성을 계속 붙잡고 버티는 것, 그것은 작가로서 가져야 할 중요한 전략입니다.”
윌리엄 켄트리지의 "예술적 전략"은 비단 예술분야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경영이론 중 '효과화'(Effectuation)라는 이론과도 일맥상통하는데요.
University of Virginia 에서 창업가 정신을 가르치는 사라스 사라스바티 (Saras Sarasvathy) 교수는 3천억 원에서 8조 원의 사이의 기업가치를 가지고 있는 27개의 성공한 기업들을 조사하여 '효과화' 이론을 정립하였습니다. 이 기업들이 목적을 달성 할 수 있었던 성공 요인들을 분석하여 만든 이론이죠.
그리고 이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효과화' 요인 중 하나는 "우발적인 상황을 레버리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대부분은 좋지 않은, 아니, 사실은 최악의 결과였다고 해요) 오히려 활용하여 이윤을 만들어 내었다는 것이죠.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모든 것을 흑백으로 보면서 이것은 성공이고 저것은 실패라고 미리 규정지어 놓지 않는 태도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혹시 지금 나는 실패했다고 생각하나요?
목탄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면서 세상을 흑백으로만 볼 수 없다고 말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예술가, 윌리엄 켄트리지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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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슨 만델라를 변호하던
인권 변호사의 아들
윌리엄 켄트리지는 1955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태어났을때부터 지금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의 집행, 폐지, 그리고 폐지 후 여전히 존재하는 인종차별의 잔해를 모두 지켜보았죠.
아버지 시드니 켄트리지는 당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가장 유명한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였습니다. 그는 1956년 넬슨 만델라를 변호하여 결국 넬슨 만델라를 석방시키는데 큰 기여를 하였죠.
자연스럽게 윌리엄 켄트리지는 “어렸을 때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어떤 곳인지"를 잘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의 일이에요. 아버지의 책상 서랍을 몰래 열어 보았죠. 거기에 초콜렛 상자가 들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거기에는 1960년에 시위하던 사람들이 경찰에 의해 잔인하게 죽여진 사진들이 있더군요."
윌리엄 켄트리지는 요하네스버그에 있는 University of Witwatersrand에 진학하여 정치와 아프리카학을 전공하였습니다.
그 역시 학창 시절 인권시위에 동참하여 체포된 적이 있었죠. 그리고 아주 잠시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걸을까도 고민했습니다.
“부모님이 모두 변호사이셨는데 저는 부모님보다 더 좋은 변호사가 될 자신이 없었어요.
저는 암기 실력도 별로였고 인내심도 없었으니까요. 저는 오히려 증거에 대한 스토리를 지어내는 것을 더 좋아했어요.
운이 좋게도, 저는 무언가를 지어내고 발명하는 행위가 징계의 대상이 아닌 환영받는 업종을 찾게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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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윌리엄 켄트리지와 아버지 시드니 켄트리지 (중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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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흑인과 백인을 분리시키는 철조망으로 만든 팬스. 당시 남아프리가 공화국은 인정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 (Apartheid)가 시행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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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딘가에 정착하기로 결심한 게 아니라, 내가 있는 곳을 떠나지 않기로 결심한 것이다
윌리엄 켄트리지는 스스로를 요하네스버그의 예술가라고 소개합니다.
“어떨 때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불안정한 정치를 피해 있는 것이 차라리 더 나은 선택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결국 저는 여기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여기서 일어나는 일들이 제 삶의 뿌리와 같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제가 하는 작업이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풍경화를 그리는 것이고, 설사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관한 것이 아니어도 말이죠.
제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있기 때문에 느끼고 경험하는 것들이 그 어떤 형태의 작업일지라도 영향을 많이 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 도시 자체가 하나의 움직이고 있는 애니메이션이에요. 그건 저에게 아주 가치가 있습니다.”
2013년 윌리엄 켄트리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를 중국의 문화대혁명에 비유하는 Notes Towards a Model Opera를 만들어 예술계의 주목을 끌게되었습니다.
"베이징에서도 상영을 했어요.
마오쩌둥의 이미지가 들어갔기 때문에 몇일만 있으면 상영금지를 당할것이라고 들었죠.
그런데 그때 또 누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2층에서 상영하니까 괜찮을거라고. 보통 중국 관리들은 2층까지 올라오길 귀찮아 한다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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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켄트리지의 Test for Manet. 마네의 작품에 많은 영감을 받은 윌리엄 켄트리지는 마네의 올랭피아 작품속 흑인 여종이 들고 있던 꽃을 오마주로 표현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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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ympia, Édouard Manet, 18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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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탄으로 그림을 그리며
세상은 흑.백 논리로만
돌아가지 않는다고
외치는 예술가
윌리엄 켄트리지는 아파르트헤이트 시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부조리와 불의를 표현할 직관적 매체로 목탄을 선택했습니다.
“목탄은 쉽게 지울 수 있지만 항상 원래 자국의 흔적을 남기죠. 목탄은 검고, 탔고, 반쯤 파괴된 재료입니다.”
윌리엄 켄트리지는 목탄 드로잉을 지우고 같은 종이에다 다시 그리는 것을 500번 반복한 영상을 제작하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목탄 드로잉을 다시 콜라주, 애니메이션, 조각, 연극으로까지 제작하는 윌리엄 켄트리지의 대부분 작업은 흑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흑백 작업을 하는 윌리엄 켄트리지는 역설적이게도 세상을 절대 흑.백논리로만 볼 수 없다고 합니다.
그것은 윌리엄 켄트리지의 작업을 관통하고 있는 "불확실성"과 "임시성"의 철학때문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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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파편화된 팩트가 아니라 하나의 과정으로 보는 것
그의 작업 형태 중 하나인 콜라주를 예로 들어볼까요?
신문기사, 잡지 헤드라인, 이미지와 같이 서로 다른 것들을 여기저기서 가져와 한 곳에 섞어 놓은 콜라주 작업 방식.
윌리엄 켄트리지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 역시 콜라주와 같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에 대한 완벽한 정보들이 없어요.
뉴스 헤드라인이라든가, 꿈의 한 장면이라든가, 전화통화를 했을 때 상대방의 말 한마디라든가.
우리는 그런 파편화된 정보를 모아서 어떤 일관된 ‘나’라는 존재를 머릿속으로 만들어 가요.
그런데 사실 ‘나’라는 이 존재는 생각과 감정들에 의해 만들어진 콜라주에 불과하죠.”
윌리엄 켄트리지의 애니메이션 작업 역시 불확실성과 임시성을 보여주고자 시작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서 테이블을 그림에 그렸을 때 우리는 테이블만 볼 수 있겠죠.
하지만 그 테이블은 원래 나무였을 것이고, 그 나무는 어떤 씨앗에서 나왔을 겁니다. 드로잉으로만은 테이블의 pre-history에 대해서는 볼수 없었던 것이죠."
윌리엄 켄트리지는 “누군가 확실성을 가지는 순간 그 사람의 목소리는 더 커지고, 권위주의적으로 변한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는 정말 많은 것들이 ‘객관적’이거나 혹은 ‘팩트’라고 받아들여집니다.
이 그림이 다른 그림보다 좋다, 이 그림은 고통에 관한 것이다. 그렇게 말할 때마다 사실 객관성이라는 것은 없어요.
사실 그것은 나의 기억와 지식이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이미지에 대해 어떤 시선을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이에요.”
즉, 이 세상을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흑백의 팩트라고 볼 수도 있고, 아니면 계속해서 전개되고 있는 거대한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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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켄트리지는 목탄 드로잉, 조각, 애니메이션, 연극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예술을 표현하는 종합 예술가로 유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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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켄트리지의 연극 Notes Towards a Model Opera 스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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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니 제 자신의 실패가 결국 저를 구원해주었던 셈이죠
삶을 단순히 흑백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과정으로 보는 것, 그의 삶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윌리엄 켄트리지가 대학생 시절, 감독이자 배우로서 어떤 극단과 작업을 하고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누군가 그에게 이런 충고를 합니다:
“하나의 길을 가지 않고,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하면 실패할 것이다.”
“좋은 충고라고 생각했죠.”
유화로 화가가 되길 원했던 그는 그 길로 미술을 그만두고 프랑스로 연극을 배우러 갑니다.
그러나 그는 곧 배우가 되기에는 스스로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무대 디자이너와 영화감독에도 도전했지만 그것마저도 실패로 끝났죠.
하지만 배우가 되기에 실패했다고 생각한 프랑스 연극학과에서 오늘날 자신의 드로잉에 많은 영향을 미친 드로잉 기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영화감독을 하기 위해 배운 무대 디자인 경험을 통해서는 애니메이션을 접할 수 있었고요.
이후 그는 목탄 드로잉, 애니메이션, 조각, 연극 등 다양한 매체로 예술을 표현하는 종합예술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죠.
“아주 긴 과정을 통해 ‘좋은 충고’라고 생각했던 충고를 다시 해체하는 과정을 겪었던 거죠.
유화작가, 연극배우, 영화감독이라는 일련의 실패 과정을 거치면서 저는 서로 다른 미디어와 서로 다른 장르를 결합시키는 것이 저에게 유일한 희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나중에 돌이켜 보니 제 자신의 실패가 결국 저를 구원해주었던 셈이죠."
결국 윌리엄 켄트리지는 예술뿐만 아니라 언어, 문학, 정치, 철학등 폭 넓은 인문.사회학 전분야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게 됩니다.
예일대학교와 Univerisity of London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수여받고, 2012년에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Charles Eliot Norton 맡기도 하였죠. 2013년에는 옥스포드 대학교의 현대미술 석좌 교수를 맡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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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켄트리지의 연극 Sibyl 중 - 윌리엄 켄트리지는 직접 자신의 연극에 배우로 참여하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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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Towards a Model Opera 중 스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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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 - 의도하지 않은 의도된 전략
"마음 속에 어떤 특정한 프로그램이 있는 것이 아니고, 또 어떨 때는 우연의 결과물이 나오기도 하잖아요.
그렇지만 그러한 생각들 사이에는 열린 공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열린 공간에서 무언가가 일어날 때마다 알아채는 것이죠.
그래서 알아차린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그렇다면 이 알아차림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좋은 질문이에요.
그러기 위해서는 열린 생각이 있어야 해요.
“만약 굉장히 확고한 계획으로 어느 방향으로 걸어가야 하고, 어디다 무엇을 그려야 하는지 정해놓는다면, 자신의 작품이 우연적으로 어떤 창의적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그 기회를 막아버리게 돼요.
정답을 모르는 것, 그리고 그 불확실성을 계속 붙잡고 버티는 것, 그것은 작가로서 가져야 할 중요한 전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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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켄트리지 자신이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로 등장하는 연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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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자신의 출처를 밣히지 않는다
윌리엄 켄트리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도 보는 사람들이 특정 메시지에 “확실성”을 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의 콜라주에 나타나는 단어들 역시 특정 메시지를 담고 있지 않죠.
소설, 시, 아프리칸 속담, 소설, 직접 누군가에게서 들은 이야기 등에서 단어와 문장을 끄집어와 조합을 합니다.
특정 메시지나 의견의 출처를 밣히지 않는것. 확실성, 귄위주의와 정반대되는 효과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죠.
윌리엄 켄트리지는 아프리카에 이런 속담이 있다고 소개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출처를 밝히지 않는다.
잘하는 의사가 치료를 못한다면 덜 잘하는 의사한테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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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삶의 자주권을 갖는 것
켄트리지는 예술은 삶의 자주권을 갖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고 결정하는 것은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조합되고 만들어진 결과물이라는 거죠.
그래서 단순히 이런 파편화된 정보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여기에 대한 의미를 만들어가고 정의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생각의 방식은 예술가에게는 굉장히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앞에서 짧게 이야기한 '효과화'이론으로 다시 돌아가 볼까요?
'효과화'이론에 의하면 27개의 성공한 기업들은 불확실한 미래가 어떨지 예측하고 거기에 행동을 맞추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들은 미래를 외부요인에 의해 발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가지고 있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여 스스로 만들어 갔다고 합니다.
지금 나의 삶을 정의하는 주인공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 윌리엄 켄트리지의 메세지는 비단 예술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창업, 사회, 그리고 개인의 삶 전방면으로 퍼져 나가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윌리엄 켄트리지 작품의 진정한 가치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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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네스버그에 있는 윌리엄 켄트리지의 작업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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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흑.백작업으로 이루어진 윌리엄 켄트리지의 작품은 집안 어디에 두어도 깊이와 품격을 동시에 소유할 수 있습니다.
특히 윌리엄 켄트리지 작품은 보는 이들에게 내면의 감정을 이끌어 내는 힘이 있습니다.
컬렉팅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윌리엄 켄트리지의 시그니처 작품인 흑.백 콜라주,드로잉을 추천합니다. 소형에서 대형 작품가지 다양한 사이즈가 있고 단독, 또는 다른 색채가 있는 작품들과도 잘 어울릴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윌리엄 켄트리지의 조각 또한 멋진 컬렉션이 될 것 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윌리엄 켄트리지가 담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자연과 특유의 블랙이 윌리엄 켄트리지의 철학과 메세지를 깊게 담아내고 있다고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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